우리는 바퀴의 몸체를 만들지만
마차를 앞으로 굴러가게 하는 건 바퀴 중심에 있는 빈 공간이다.
우리는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담아 내는 건 그 안의 빈 공간이다.
우리는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 내지만
그 집의 진정한 가치는 내부 공간에 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와 함께 일하지만
우리가 정작 사용하는 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신현림의 '내 서른 살은 어디로 갔나' 중 노자의 인용구
언제부터인가 삶을 사는 동안 갖고 싶은 것, 혹은 해야 하는 일 등에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목표가 되었다.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에 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수영에서부터 음악, 미술에 이르기까지 재능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꿈을 빨리 정할수록 남보다 빨리 준비할 수 있고, 그만큼 앞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많은 돈을 들이더라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항상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습득하고 배우고, 그것으로 인해 인생에서 더 많은 것들을 얻고 성취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런 추세가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아무런 꿈도 없이, 목표도 없이 하루하루 그냥 떼우며 사는 것보다는 백 배는 나을 것이다. 작은 꿈이라도 그것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의 자세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선천적으로 나는 조금은 게으른 사람이다. 일이 복잡해지거나, 하루 동안 할 일이 너무나 많이 쌓여 있거나, 미리 계획하지 않았던 일들을 급박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귀찮음이 가장 앞서 나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귀찮아'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저 어떤 일을 하기 싫은 것을 '귀찮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는 나를 보며, 뭔가 나만의 위시리스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직 만들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은 일' 혹은 '갖고 싶은 것' 등의 목록을 적은 위시리스트. 그걸 만들기 위해 생각을 해 보았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이고, 혹은 갖고 싶은 것들은 또 무엇인지. 원래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뭔가 거창한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대충 한 번 적어보자.
1. 블로그 유지시키기. 어떤 글이라도 자꾸만 쓰기. 그 글을 통해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소통하기
2. 신디사이저 한 대를 사서 어렸을 때 치다 만 피아노를 연습해보기. 익숙해지면 곡도 만들고 가사도 써 보기.
3.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읽고 쓰고 간단히 의사소통할 정도만큼 배우기. (프랑스어나 일본어)
4. 꾸준히 운동하기.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기 전에
5. 사진 계속 찍기. 귀찮더라도 휴일이 되면 한 번씩이라도 나가서 사진 찍어보기.
6. 마흔 살이 되기 전에 직업으로 삼는 일 이외에 다른 한 가지 일에 전문가가 되기.
7.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기. 조금씩이라도 기부하기.
8. 책 읽기. 누군가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의 목록 만들기.
9.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는 기본 메뉴얼 만들기. 논술에 대해 더 공부해 보기.
10. 좋은 영화 찾아서 보기. 좋은 영화를 찾아내는 눈 기르기. 무언가를 보고 나면 꼭 감상을 남기기.
11. 음악에 대한 나름의 취향을 확립하기. 다양한 음악을 통해 다양한 감성을 익히기.
지금 생각나는 건 이정도이다. 번호 순서가 중요도의 순서는 아니고, 그저 생각나는 순서대로 적은 것뿐이다. 살펴보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들도 있고, 혹은 조금 더 후에 시작해야 할 일들도 있고, 이미 하고 있는 일들도 있다. 서른이 되어가는 남자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목록은 얼마나 더 비슷하게 나올까. 나는 항상 내가 특별하다 생각했지만, 또 나는 항상 보편적인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제법 여유 시간도 많이 남는 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내가 과연 그런 의지를 갖느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위시리스트를 잔뜩 적어두고 다시 위에서 언급한 노자의 인용문을 읽어 본다. 그러고 나면 내가 너무 복잡하게 살려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삶을 살수록 더 많은 것을 더 가지게 되고 버리지 못하고, 그러면 점점 몸집만 비대해져 비정상의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점점 더 가지려 하고, 점점 더 욕심이 많아지고, 그래서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에 물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심 뿐만 아니라 지적인 욕구도 과하면 결국 부작용이 더 심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른 살을 한 해 앞두고 있는 지금, 무언가를 비워낸다는 것은 나에게 와닿는 말은 아니다. 아직은 더 채워야 하고, 부족하고 모자란 것들을 계속해서 채워나가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때인 것 같다. 물론, 그 일에 너무 조바심내고 스스로를 압박하며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려 한다. 마음을 조금 더 느긋하게 가져야지. 위에 쓴 나의 위시리스트가 마구 달려서 꼭 도달해야 하는 골인 지점은 아니라 믿는다. 천천히 삶을 살아가는 동안 즐기며, 알아가야 하는 것이라 믿는다. 게으르지 말고, 그렇다고 마음의 여유를 잃지도 말고, 천천히 앞으로 전진해야 할 것임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